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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16

이 세상에 하나의 재주도 없는 사람은 없다, 정조 "이 세상에 하나의 재주도 없는 사람은 없다." 이만큼 정조의 사상을 잘 드러내는 구절이 또 있을까요?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의 비극적인 사건을 목격한 사람으로 누구보다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엇나갈 수도 있었을 듯한데 정조는 그 비극을 통해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그 성찰을 바탕으로 조선사에 남을 성군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화정치를 꽃 피운 정조 정조는 1752년 영조의 둘째 아들 사도세자와 혜빈 홍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산입니다. 8살의 나이에 세손에 책봉되었고 3년 뒤 1762년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자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되어 제왕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1775년에는 82세의 영조가 대리청정시켰고 이듬해 영조가 죽자 25세의 나이로 조선 제22대.. 2023. 4. 22.
비극적인 父子의 이야기, 영조와 사도세자 완벽주의자 영조 노론과 소론 사이의 치열한 당쟁 속에서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며 가까스로 왕위에 오른 영조는 1694년 숙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무수리 출신 화경 숙빈 소생으로 이름은 금, 이후 연잉군은 봉해졌으며 숙종의 명에 따라 대리청정하였고 경종 1년에는 왕세제에 책봉되었습니다. 영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자신을 곤경에 몰아넣고 수많은 대신들을 죽게 했던 신임사화(신축년과 임인년 사이에 일어난 사화로 왕위계승 문제를 둘러싼 노론과 소론 간의 싸움으로 소론이 실권을 잡게 됨)에 대하여 책임을 추궁했습니다. 영조는 소론의 영수(領袖: 여러 사람 가운데 우두머리)인 김일경, 남인의 목호룡 등 신임사화를 일으킨 대신들을 숙청한 다음 소론 대신들을 내몰고 노론 인사들을 대거 등용하였으니 이것.. 2023. 4. 21.
숙종과 희빈 장씨, 그리고 그의 아들 경종 숙종은 인경왕후, 인현왕후, 인원왕후 세 명의 왕비를 맞이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아들을 한 명도 얻지 못했습니다. 숙종에게 아들을 안겨준 이는 천비 소생의 두 후궁이었는데 나인(궁궐 안에서 왕과 왕비를 가까이 모시는 내명부를 통틀어 이르는 말) 출신의 희빈 장씨와 무수리(나인들에게 세숫물을 떠다 받치는 종) 출신의 숙빈 최씨가 그들이었습니다. 희빈 장씨가 낳은 아들은 왕자 윤이고, 숙빈 최씨가 낳은 아들은 왕자 금이었습니다. 그 둘의 나이 차이는 여섯 살이었습니다. 왕자 윤은 14세 되는 1701년 친모인 희빈 장씨를 잃었습니다. 아버지 숙종이 어머니에게 사사(賜死: 임금이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던 일)하는 것을 본 이후 그때부터 병을 얻었습니다. 이때 윤의 나이는 14세였는데 이 사건 이후 줄곧 병환.. 2023. 4. 20.
비운의 왕 인조의 등극, 조선의 끝없는 변란 인조는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자 광해군의 서조카, 인목대비의 서손자입니다. 1623년 3월 서인 세력과 함께 무력으로 난을 일으켜 조선 제16대 왕에 올랐으니 그때 그의 나이 29세였습니다. 인조는 등극 초기 광해군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조정과 사회를 안정시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자 했으나 시작이 순탄하지 못했던 만큼 안팎으로 여러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괄의 '삼일 천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한 서인들은 자신들이 일으킨 것과 같은 반란이 또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염려하는 동시에 와해되어 각자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역모설을 퍼뜨려서 반대파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계파 간의 갈등이 빚어낸 결과물이 바로 '이괄의 난' 입니다.. 2023.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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