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 기우, 노파심
인생의 비애를 느낀다
사람은 상처, 손실감, 불안감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슬픔을 느낍니다. 슬픔을 나타내는 한자도 매우 다양합니다. 비(悲), 애(哀), 도(悼), 측(惻), 창(愴) 등은 모두 '슬프다'라는 뜻입니다. 그 중 가장 흔하게 쓰는 표현은 悲와 哀입니다. 悲는 心(마음 심)자와 非(아닐 비)자가 결합한 글자이며 非자는 새의 양쪽 날개를 그린 것으로 ‘아니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悲자는 이렇게 ‘아니다’라는 뜻을 가진 非자에 心자를 결합한 것으로 ‘마음(心)이 영 아니다(非)’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둘 이상한자의 의미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한자를 회의자(會意字: 뜻을 모아서 만든 글자)라고 합니다. 哀는 口(입 구)와 衣(옷 의)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글자로 '옷깃으로 입을 가리고 운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비애(悲哀)는 '슬픔'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애이불비(哀而不悲)'라는 말도 있습니다. '슬프지만 슬퍼하지 않는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둘 다 '슬픔'을 뜻하지만 한자의 뜻으로 보면 슬픔의 정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哀'는 속으로 삭히는 슬픔이고 '悲'는 겉으로 드러나는 슬픔입니다. 옷으로 입을 가리고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우는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옵니다.
그건 기우야
우리가 흔히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의미로 '기우'라는 말을 씁니다. 기우(杞憂)는 "기(杞)나라 사람의 근심"이라는 뜻의 고사성어입니다. 중국 주(周)나라 때에 기(杞)나라에 사는 한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늘 걱정하는 이야기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사람은 걱정이 너무 심해 집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그 마을의 현자가 그 걱정많은 사람에게 하늘은 무너지지 않고 땅은 꺼지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근심을 털어주었습니다. 그제서야 이 사람은 걱정을 풀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근심을 뜻하는 한자에는 우(憂)와 환(患)이 있습니다. 전자는 정신적인 근심, 후자는 육체적 걱정에 흔히 쓰입니다. 그래서 위의 성어도 기환(杞患)이 아니라 기우(杞憂)일 것입니다. 憂는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 채 걷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한자입니다. 뭔가 근심거리가 생겼을 때 우리가 흔히 하는 행위가 연상되지 않나요?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患은 육체적 걱정의 의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병환(病患: 병의 높임말), 환자(患者: 신체적 병을 앓는 사람)에 患을 씁니다.
노파심에...
남을 걱정하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노파심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노파(老婆)는 '늙은 여자, 할머니'를 뜻합니다. 즉 노파심을 '할머니의 마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늘 자식 걱정, 가족 걱정을 하십니다. 장성한 자식이 집을 나설 때로 '차조심 하라'며 나서는 길을 걱정하십니다. 어떤 경우엔 다 아는 걸, 듣기 귀찮다 라고 느낄 정도로 근심을 표현하십니다. 오랜 세월을 살며 갖은 일을 겪었기에 매사 조심스럽고 걱정이 많은 것이 할머니의 마음입니다. 온갖 풍파를 헤치며 과거를 거쳐 현재를 살고 계시는 할머니의 마음을 꼰대가 아닌 어른의 지혜라고 생각하며 그 마음에 감사를 표하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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