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하, 불초, 반포초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예로부터 효와 관련된 많은 고사성어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나이 드심이 슬퍼 눈물을 쏟았던 백유의 이야기(백유지효, 伯兪之孝), 더 이상 효도할 부모가 계시지 않아 슬퍼했던 고어의 이야기(풍수지탄, 風樹之嘆) 등이 그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형제의 관계는 내가 끊고 싶다고 해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늘이 맺어 준 것이라 해서 천륜(天倫)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언론을 통해 부모와 자식 간에 또는 형제 간에 천륜을 거스르고 패륜(悖倫: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남)을 일삼는 안타까운 사건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상형한 한자가 바로 老(늙을 로)입니다. 그리고 老와 子(아들 자)를 결합하여 자식이 지팡이를 대신하여 늙은 부모를 업고 있는 모양의 한자가 바로 孝(효도 효)입니다. 지팡이를 대신하여 나이 드신 부모님을 업어드리지는 못하더라도 등지거나 천륜에 어긋하는 패륜을 저지르는 짐승만도 못한 자식은 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효와 관련된 재미있는 한자어를 알아보겠습니다.
슬하의 자식
슬하(膝下)는 글자 그대로 '무릎 아래'라는 뜻입니다. 자식이 태어나면 적어도 3년은 갖은 정성을 다해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그 3년 간은 말그대로 애지중지(愛之重之: 사랑하고 소중히 여김)하며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키워야 합니다. 갓난아기는 부모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니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으며 몇 개월이 지나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더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가장 안전한 부모의 슬하, 무릎 아래에 앉혀 놓고 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슬하에서 안전하게 놀 수 있게 애지중지 키웠던 자식이라도 마냥 부모의 슬하에만 있을 수는 없으며 부모 역시 자식을 자신의 슬하에 두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3년이 지나면 점점 고집이 생기고 뭐든 '내가' 하려고 하니 그때부터는 무조건 나의 슬하에 두려고 하기보다는 서서히 자립심을 키울 수 있도록 부모도 기다리고 바라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점점 클수록 부모가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것은 절대 좋은 교육이 아닙니다. "책을 읽어라"라고 말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책을 읽어야 합니다. "휴대폰을 꺼라"라고 말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휴대폰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임을 항상 생각하고 부모가 자식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의 인성이 문제다라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내 자식의 '문제행동'을 지적하기 전에 부모는 그 문제행동에서 '나의 문제'를 발견하고 반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쁜 자식'은 없습니다. '현명하지 못한 부모'가 있을 뿐입니다. 장군이 현명하면 오합지졸(烏合之卒: 규율이 없고 무질서한 병졸)도 정예군(精銳軍: 날래고 용맹스러운 군사)이 될 수 있습니다. 지혜롭고 현명한 부모는 장성한 자식을 영원히 자신의 슬하에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독립시켜야 할 때를 알고 그때가 되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볼 수 있는 '용기'있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같이 불초한 사람이
불초자(不肖子)는 자식이 부모를 상대하여 자신을 낮추어 일컫는 말입니다. 불초(不肖)란 '아버지를 닮지 못함, 아버지만 한 능력이 없고 어리석음'이라는 뜻입니다. 불초의 초(肖)는 '닮다'라는 뜻의 한자로 그래서 초상화(肖像畵)는 '실제 모습과 닮게 그린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불초'는 자식이 남에게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부모가 남에게 자식을 낮추어 이르며 '제 자식이 불초해서'라고 쓰기도 합니다. 「효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
우리의 몸, 털, 피부 모든 것은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며
몸과 마음을 바르게 세워 도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떨쳐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끝이다
자식이 어떤 일에 성과를 내고 이름을 떨칠 때 '아버지를 닮아서, 어머니를 닮아서'라는 말을 듣고 기분 좋지 않을 부모님은 없을 것입니다. 나의 이름과 함께 부모님의 이름까지 떨칠 수 있는 훌륭한 인물이 되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부모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부끄러운 자식은 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누가 가마귀를 검고 흉하다 했는가
서양에서 까마귀는 늘 나쁜 마녀의 하수(下手: 남의 밑에서 졸개 노릇을 함) 역할을 하는 흉조(凶鳥: 흉물스러운 새)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까마귀는 예로부터 반포조(反哺鳥)라고 일컬었습니다. 반포(反哺)란 '도리어 먹여준다'라는 뜻으로 반포조란 '어미새를 보살피고 먹여주는 새'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까마귀는 부화하고 60일간은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 새끼를 키우지만 그 후에 새끼가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대신하여 사냥을 하고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까마귀를 '자오(慈烏: 은혜 갚음을 할 줄 아는 새)', '효조(孝鳥: 효도하는 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의 시인 박효관은 <교훈가>라는 시조에서 까마귀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그 누가 가마귀를 검고 흉하다 했는가
반포보은(反哺報恩: 도리어 부모를 먹이고 은혜를 갚음)이 이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퍼하노라
한낱 짐승에 불과한 까마귀도 그 어미에게 효도하는 새로 일컬어지는데 만물의 영장(靈長:신령 같은 힘을 가진 우두머리)이라고 불리는 人間으로 태어나 천륜을 거스르는 짓을 한다면 '反哺鳥' 까마귀 앞에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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