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46 연산군 폭정의 결정판, 무오사화 · 갑자사화 집권 초기 연산군 연산군은 성종과 숙의 윤 씨의 아들로 윤 씨가 왕비에 책봉되자 연산군에 책봉되었습니다. 1479년 윤 씨가 폐비가 된 후 1483년 여덟 살의 나이로 세자에 책봉되었고 1494년 성종이 죽자 열아홉에 조선 제10대 왕이 되었습니다. 연산군은 19세에 섭정(攝政: 임금이 직접 통치할 수 없을 때 임금을 도와 대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받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왕위에 오를 때가 12월이었으니 며칠만 지나면 성년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1494년 12월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4년 뒤인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폭군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즉위 초에는 성종 대의 평화로운 모습이 계속 이어졌고 인재가 많았던 덕에 질서가 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 4.. 2023. 4. 16. 폐비의 아들 · 희대의 폭군, 연산 왕자 융, 어떻게 세자가 되었나 성종은 도학을 숭상하고 자신을 스스로 군자(君子: 유교 사회에서 덕성과 교양을 겸비한 인격자)라 칭했으나 한편으로는 호기(豪氣: 호방하고 씩씩한 기운)가 넘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12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30명에 달하는 자식을 얻었는데 그런 호방한 기운이 불행의 씨앗을 낳았으니 그것은 바로 희대의 폭군, 연산이었습니다. 한 때 성종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왕비 윤 씨는 성종이 다른 여인들과 보내는 일이 많아지자 왕 주변의 후궁들을 독살할 목적으로 비상(砒霜: 비석을 태우고 승화시켜서 만든 서리 같은 결정체의 독약)을 숨겼다가 발각되어 이 일로 빈으로 강등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윤 씨는 성종의 배려로 강등되지는 않았지만 왕을 가까이하는 여인들에 대한 그녀의 질투는.. 2023. 4. 15. 조선의 태평성대, 성종시대 성종 초기, 할머니의 섭정 성종 시대는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였습니다. 무엇보다 성종의 정치력에 힘입어 조정이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종은 치세에 매우 능했는데 권신을 견제하기 위해서 사림 세력을 끌어들여 권력의 균형을 이룸과 동시에 유교 사상을 더욱 정착시켜 왕도 정치를 실현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로 모든 기초를 완성했다는 뜻의 성종(成宗)이라는 묘호를 얻었습니다. 그만큼 조선 개국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열어갔습니다. 성종은 1457년 세조의 큰아들 의경 세자와 세자빈 한확의 딸 한 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혈이다.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 의경 세자가 죽고 세조의 손에 의해 키워졌는데 인품이 뛰어나고 활쏘기, 서화 등에도 능하여 세조의 총애.. 2023. 4. 14. 세종이 사랑한 천재 과학자, 장영실 천재 과학자, 장영실 세종시대 과학혁명을 주도한 인물은 단연 장영실이었습니다. 세종의 과학에 대한 열정이 아무리 대단했다고 한들 장영실이 없었다면 그 열정을 현실화시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장영실의 태생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데 조선시대가 사대부 중심의 사회였던 만큼 천민 출신이었던 장영실에 대한 기록이 전무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는 중국에서 귀화한 아버지와 기생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동래현에서 관노 생활을 하던 중 그 재주가 출중하여 천거되었습니다. 「세종실록」에 여진족에서 붙잡혀 있던 중국의 기술자들이 조선으로 탈출하여 조정의 대접을 받고 관기(官妓)를 아내로 삼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장영실의 아버지도 그런 부류의 인물이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2023. 4. 13. 이전 1 ··· 33 34 35 36 37 다음 반응형